세상의 모든 썰/오싹오싹 괴담 썰

[무서운이야기] 진실의 방

아싸후르뱅뱅 2023. 11. 16. 15:52
반응형

 

부부 생활 2년 차.

특출나게 나쁠 것 없는, 오히려 상당히 괜찮다 할 수 있는 신혼을 보내고 있다.

나와 와이프 벌이 정도라면 집 대출금 갚으면서 섭섭지 않게 먹고살 만했고,

4개월 뒤면 소원대로 예쁜 딸아이가 태어날 테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터였다.

다만 한가지.

최근 들어 와이프가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할까?”

장난스럽게 말하는 와이프였지만 난 영 달갑지 않았다.

그전에도 비슷한 말로 자리를 마련하였고,

사실상 심문, 취조나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났는지,

누구와 전화를 했는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물론 난 찔리는 구석 하나 없으니 여봐란듯이 탈탈 털어 보여주었고

와이프는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의구심을 숨긴 채 자리를 끝낸 터였다.

평소 행실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소홀한 적도 없었는데

무슨 이유로 날 의심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싫은 건 싫은 거고 남편으로서 와이프의 의심을 풀어주는 것도

좋은 부부 생활을 위한 요소였으니 모른 척 넘어가 보기로 한다.




“이거 마셔봐. 친구한테 배운 건데 맛있대.”

주방에서 잠시 달그락 거리더니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칵테일 한잔을 내게 내밀었다.

이런 재주도 있었나 싶어 기쁘게 받아들고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알코올은 너무 적고 지나치게 달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남기지 않고 다 마시기로 했다.

“맛있다. 이건 이름이 뭔데?”

“음…. 진실의 방. 나도 마시고 싶긴 한데 애기 때문에 안되니까

나 대신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쭉 들이켜.”

희한한 이름이라 생각하며 군말 없이 한잔을 다 비워내자

와이프는 예상했던 대로 진지한 얼굴을 하며 내 앞에 앉았다.

“나 있잖아. 자기한테 물어볼 게 있어.

꼭 솔직하게 대답해줘야 해. 알겠지?”

“당연하지. 내가 뭐하러 자기한테 거짓말하겠어.”

자신 있게 대답하고 나니 왠지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 도수 높은 술도 아닐 텐데 벌써 취기가 도는 것일까?

“자기 엊그제 늦게 들어왔잖아. 야근했다고 했는데 진짜야?”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였기에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당구 한게임치고 왔어.”

난 내가 뱉어낸 말에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그날에 대한 핑계를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짜놓았는데 갑자기 진실을 토해내 버린 것이다.

와이프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다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오랜만에 연락 온 거였거든. 간단하게 당구나 치고 싶어져서 같이 놀았어.

근데 친구 만난다고 하면 괜히 의심을 살까 싶어 야근이라고 거짓말했던 거고.”

“어쨌거나 거짓말했던 거네 나한테?”

와이프의 말을 듣고 나자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난 지금 오로지 진실만 말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깨끗하게 비워진 잔을 바라보았다.

진실의 방.

칵테일의 이름.

혹시 여기에 무언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에도 와이프의 질문이 이어졌다.

“친구 누구? 당구만 친 거 맞아?”

“재혁이라고 대학 동창. 걔는 술 못해서 대학 때부터 만나면 밥이나 먹고 당구만 쳤어.

이번에도 오랜만에 당구장 가서 당구 치고 짜장면도 시켜 먹고 그랬지.

걔도 와이프한테 끔뻑 죽는 녀석이라 같이 놀다가 9시에 끝내고 각자 집 간 거야.”

다행히 와이프의 표정은 풀렸다.

적어도 허튼짓 안 하고 건전하게 놀아서 화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질문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럼 지난달에 선아 라는 여자랑 통화한 건?

동창회 때문이라고 했는데 맞아?”

조금 더 당혹스러운 질문에 어떻게든 입을 다물려 했지만, 이번에도 그러지 못했다.

“동창은 맞아. 김선아라고 동아리 후배.

근데 동창회 때문은 아니고 걔가 내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 온 거였어.”

와이프는 매서운 얼굴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년은 뭐 하는 년인데 남의 남편 얼굴을 굳이 굳이 보겠다고 전화까지 했데?”

“예전에 나 좋아하던 애였어.

졸업하고 나서 각자 사느라 신경 안 쓰고 살다가 나도 결혼하고 걔도 결혼해서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이혼했나 봐.

그냥 서럽고 힘들기도 하다면서 왠지 모르게 나랑 얘기해보고 싶다고 만나자더라.”

술술 말하는 내 입에 뭐라도 처넣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년 보기로 했어?”

와이프는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듯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와이프가 임신 중이라 시간 내기 곤란하단 핑계 대고 끊었어.

다행히 이후로 연락은 안 왔고, 혹시라도 또 오면 그냥 차단해 버리려고.”

와이프는 내 대답에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진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어?”

“만나고 싶다 어쩌다가 문제가 아니라 만나면 안 되지.

그 상황에서 만나서 좋을 게 뭐가 있어.

나가기만 해도 당신한테 죄짓는 거고 남편 자격 없는 사람 되는 건데.”

이번엔 큰 감동을 한 듯 손으로 입을 가리는 와이프였다.

그제야 나 역시 안도하며 아내를 다독일 수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내가 거짓말을 안 할 수는 없겠지.

근데 나쁜 거짓말은 안 할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다 진짜고.”

와이프는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자기가 뭔가 딴생각 가지고 있단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막 나 말고 딴사람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서….

친구한테 부탁해서 자백제 넣은 음료 만들어본 거야.

이거면 숨기고 있는 거 술술 불 거라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난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하게 와이프를 안아주었다.

“됐어.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마.

대신 다음엔 절대 또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와이프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하게 물어봐.

어차피 거짓말도 못 하니까 내가 다 솔직히 대답할 거 아니야.”

와이프는 조금 미안해하면서도 슬쩍 질문을 던졌다.

“자기는 내 어디가 좋았어?”

“당신은 내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여자야.

외모적인 것도 그렇고 요리 잘하고 스타일도 좋고 성격도 최고잖아.

이 여자가 최선이다. 이 여자 밖에는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늘 하던 말이었지만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완전한 진심이란 걸 알게 되니

느낌이 또 다른 모양이었다.




와이프는 새삼 감동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나랑 결혼하고 나서 한눈판 적도 없어?”

“당연하지. 내 기준엔 다른 여자들은 다 수준 미만이야.

당신이 최고지. 그래서 한눈팔 이유도 없고 생각도 없어.”

“하. 진짜 자기 너무 멋있는 남자다.”

와이프는 예뻐 죽겠다는 듯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딱 하나만 더 물어볼게.

우리 자기, 나 정말 사랑해?”

난 당당히 가슴을 펴 보이곤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히 사랑하지.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고마워. 나도 사랑해!”

가볍게 입을 맞춘 와이프는 일어나다 말고 다시 날 돌아보았다.

“잠깐…. 지금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말이었지만 와이프는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지금의 난 질문을 거부하지 못한다.

안도한 나머지 너무 안일했던 내게 속으로 욕을 뱉으며 대답을 토해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랑하니까 지금은 이라고 한 거야.

나중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겠지.”

“나중? 나중 언제? 누굴 사랑하는데?”

“우리 딸 태어나면 딸을 더 사랑하게 될 거야.”

“아. 그 소리였어? 우리 딸이 아빠 사랑 다 독차지 하려나 보다.”

와이프는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내 답은 끝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러려고 당신이랑 결혼한 거거든.

첫 번째 생긴 아이가 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러려고 결혼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자기는 완벽에 가까워. 외모나 성격도 훌륭하고 지적이고 우아하지.

근데 가까운 거지 완벽은 아니야.

조금씩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

믿음도 부족하고 그거 때문에 가끔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기도 하잖아.

또 단어 사용이라던가 사소한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들.

다 조금씩 부족하단 말이야.

이건 이미 굳어진 거라 고칠 수가 없어.

근데 만약 당신의 유전자를 가진 어린애라면?

그럼 내가 잘 교육해서 완벽하게 키울 수 있지 않겠어?”

와이프는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쉽게 말해서 당신은 현재로선 내게 가장 사랑하는 여자긴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걸 보완한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를 만들려고

당신이랑 결혼 한 거라고.

당신 닮은 딸을 내가 완벽하게 교정 교열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여자가 되지 않겠어?

그때가 되면 당연히 당신보다 그 여자를 사랑하겠지.

그러니까 아빠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

한 명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사랑 말이야.”

와이프는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곤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세심한 작업이라 비밀이어야 되는데

이걸 말해버리는 바람에 일이 좀 복잡해졌네.

당신이 이혼 원하면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어.

돈도 필요하면 가져갈 만큼 다 가져가.

근데 양육권은 내가 가질 거야.

법적으로든 뭐든 사랑하는 내 딸을 뺏어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와이프는 끝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 사랑하는. 정말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 딸 말이야.”

 

 



-------------------------------------------------------------------------

 

 

출처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82839

반응형